갈3장13절/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 16절 이하의 아담과 하와의 벌과 죄사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우린 원죄에서 속량, 용서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늘 원죄 타령을 합니까?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사 아담에게 주어졌던 종신토록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먹는 저주에서 속량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내가 수고한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먹는 안식의 복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시와 엉겅퀴란 사단의 빼앗음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또한 하와가 받았던 저주도 속량되었습니다.
잉태의 수고를 우리는 더하지 않습니다.
출23장25절 26절에 말씀하시길
여호와를 경외하면
네 양식과 물에 복을 주어 병을 치유하고
네 탕에 유산하는 여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여자가 없게 하겠다 하셨지요.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성취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못 누리고 있는 것은
예수의 대속을 주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때 잉태는 영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더이상 남편, 육신에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아직 이게 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것도 계속 빼앗기고 있는 것이지요.
더이상 창3장16절에서 말씀하시는 남편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즉 사단이 내 혼의 주인일 수 없으며
우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을 남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저하늘의 별과같이
저바다의 모래와같은 영생의 자녀를 유업으로 나는 물려 받았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내 안에 영원토록 삼위일체로 거하시는 복을 나는 받았습니다.
이것은 끊임없는 믿음의 고백과 주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어 놓았어도 지키지 않으면 사단이 다 훔쳐가버립니다.
예수님의 뿌린피와 끊임없는 십자가 상처묵상과 빠지지않고 줄이지않는 평생의 기도의 안식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기도가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면 안식이 됩니다.
주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율법의 원죄의 죄와 저주를 속량하여 주심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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