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도공격이 하도 쎄고 영적전쟁이 치열하다보니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루시퍼는 왜 타락했을까?
이유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이런 상상은 어떨까?
사랑은 확장하고 싶은 본성이 있다.
혼자일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둘이 되면 자녀를 낳아 사랑을 나누고 싶고
또 그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손주를 낳아서 가족이 확대되는 기쁨을 누리지 않는가?
하나님도 그러셨다. 하나님은 사랑자체이시니 오죽하셨겠는가?
그래서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만드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느 이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될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가 필요하셨다.
그 테스트에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감당하신 것과같은 어떤 난제를 주님께서 루시퍼에게 부탁하셨다.
그런데 루시퍼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들때문에 자기가 그런 고난을 당해야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부하들까지 꼬득였다.
결국 그 모반은 하나님께 알려지고 진노를 사서 천국에서 추방되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 혹은 부탁을 거절하셨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셨을까?
아버지의 뜻은 확고하신데 그 명을 받은 사람이 아버지의 선한 계획을 오해하고 속으로 계속 원망하고 뜻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면 삼위일체의 상태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어차피 이땅에 성육신 하실때 삼위일체의 영광을 비우고 오셨다.
오늘 나도 루시퍼가 될 수도 예수님이 될 수도 있다.
구원받은 자는 또 다른 자를 위해 해산의 고통을 감당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안하겠다고 하면 그 순간 우린 루시퍼와 같이 지옥행 티켓을 이미 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요즘 자꾸 겟세마네의 예수님을 묵상하게 된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그 고뇌
죽어야 산다.
십자가지고 죽어야 부활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지 않으셨다면 독생자이신 그분도 아마 루시퍼가 되셨을 것이다.
죄는 그 죄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게 만들거든.
그건 그러니까 죄란 사랑에 대한 신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거든.
순종이 살 길이야
죽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