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나의 생일이었습니다.
나는 혼자 살므로 아무도 나의 생일을 기억해 주지 않았고 축하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산 떠는것을 원래 좋아하지 않아서 알리지도 않고 평소에 구지 남 생일을 챙기지도 않는 편이라 뭐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외롭거나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단이 우울의 영이나 슬픔의 영을 극도로 부으면 그런 날은 완전히 감정이 바닥을 헤맵니다.
어제도 분명 그럴 소지가 있었지만 어제는 사단이 침투하지 못했습니다.
와! 예수님께서 이제 내 안에서 모든 존재위에 뛰어나신 이름으로 평화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어제는 나는 아무런 사람에게도 위로를 받지는 못했지만 하루가 끝나고서야 나는 예수님께로부터 '평화'를 생일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평생 받은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야기도 중에 깨닫습니다.
나의 모든 슬픔과 거절감의 근원은 어머니 배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다 감당하셨다는 것을요.
내가 5번째 딸로 잉태되었을때
나는 딸인지 아들인지 감별을 위해 산부인과로 그옛날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부산으로까지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지혜를 주셔서 70%는 아들이고 30%는 딸이라고 말함으로 겨우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마터면 마리아의 배속에서 요셉이 잉태를 공개했다면 돌을 맞아 죽을뻔 하시는 저주를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이 나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나는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나를 임신하셨을때부터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고 하십니다. 그때 어머니는 슬픔의 영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은 태중의 나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런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뚜렷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께서 태중의 당신때문에 파혼과 돌팔매질의 죽음의 저주를 감당하셨습니다.
내가 태중에서 겪었던 생명의 위협과 거절의 슬픔을 예수그리스도께서 다 갚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달은이상 더이상 그 저주가 내 인생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형제들로부터 항상 거절의 저주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늘 슬펐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형제로부터 더이상은 거절을 받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사단의 저주였던 것입니다.
너가 네부모가 그런 죄를 지었으므로 네가 그런 저주를 받는거야!하고 참소해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이제 확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와 내 부모가 그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와 저주를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그분 스스로가 태중에서부터 그 저주를 감담하시고 나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깨닫고 믿음을 주신 평강의 왕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어제의 외로움은 나를 이렇게 다시 태어나도록 하신 예수님의 배려였습니다.
나는 이제 정말 기쁘고 행복합니다.
내 인생은 복되고 행복합니다.
내게는 예수님의 사랑과 평강이 강물같이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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