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이 key다!

PrayerShin 2015. 2. 13. 07:46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의 열쇠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십자가상 수난의 현장에 계신 주님을 사랑해야만 진정한 깊은 사랑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람의 예로 생각해보면 쉽다.

'결혼'이란 완성의 단계로 두 젊은 남녀가 들어가려면 정상적인 경우에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랑도 너무 가벼워서 아쉽지만, 서로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않고 어떤 사건 앞에서도 깊이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 관계가 되려면 모진 세월, 험한 풍파 다 겪으며 시간과 신뢰를 쌓은 관계일 때 가능하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에누리없이 똑같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울때 예수님이 함께 해주셨고 나의 무거운 죄짐 다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듯이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오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의 영생 중에 가장 고통스럽고 모욕스럽고 아팠을 때가 33년간 인간의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였다.

그 중에서도 십자가형을 받던 그 하루의 고난은 온 우주가 함께 울었던 날이었다.

 

사랑때문에

오직 사랑때문에 그분은 그렇게 하셨다.

사랑때문에 자신의 영광 전부를 버리고

발가 벗으셨고

사랑때문에 엄청난 찢기는 아픔을 묵묵히 견디셨다.

 

그런데 그 사랑, 그 피뿌림으로 구원 받은 내가 그 순간을 기억조차 해드리지 않으면서 그분을 사랑한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상대의 아픔을 모르면서 서로간에 진실한, 성숙한 사랑, 서로 안에 거하는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의 극치는 매일 십자가상 예수님을 눈앞에 잊혀지지 않도록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쏟아 붇는 비보다 예수님의 심장의 사랑의 피는 더욱 세차게 영원토록 뿌려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엘리야 선지자를 위해 기꺼이 내 놓았고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내어 드렸고

성전의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들판에서 어린아이는 자신의 오병 이어를 기꺼이 예수님께 드렸다.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극한적 상황에서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입증했던 것이다.

이들은 계산하지 않았다.

 

그것이 없으면 당장 내일은 굶고 죽은거나 다름없는 처지가 될줄 뻔히 알았지만 그들은 계산하지 않았고 사랑과 경외함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모두 성경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사랑은 위대한 헌신이 있어야하고, 나의 마지막 모든 것까지 다 아낌없이 드리는 것이다.

 

보상을 바라는 헌신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거래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믿음의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위대한 사랑이다.

 

당신이 이렇게 하신것처럼 우리에게도 그 믿음을 보여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왔을때 머뭇거리거나 외면한다면 당신에게는 두번 다시 그러한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기회가 남아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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