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부어지자 두려움의 정체가 폭로되다!

PrayerShin 2017. 1. 7. 03:53

교만의 영도 정도의 차이가 천차만별 하듯이

두려움의 영도 수준이 천차만별하다.

 

예수님의 하나님적 신적 사랑이 부어지자

내 안의 두려움의 정체가 발각되고 폭로되었다.

 

거절받을 것이 두려워 사랑의 용기를 내지 못했고

거절받을 것이 두려워 잘못된 선택들을 해왔었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고 열정도 죽이고

그저 나이가 먹었으니까라고 속이고

이젠 열정이 없어!하고 뒤로 물러서 있었던 거였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물론 이생각의 변화 자체가 영적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주어진 변화이다.

 

사랑한다면 트럼프처럼 도전하는 것이다.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나라는 사랑의 아들의 나라라고 하셨다.

 

사랭의 나라!

사랑하지 않고는 이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두려움은 사랑의 반대다.

두려워 하고 있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

 

그럼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어지는가?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깊이 잠재되어 있는 두려움의 영은 너무나 깊고 교묘해서 아마도 예수님의 사랑이 쏟아 부어지기 전에는 이기기 힘든다고 본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언제 부어지는가?

 

그것이 관건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부어진다.

이겨야 부어진다.

 

참 신비다.

사랑이 참 쉬운것 같아도 진짜로 제일 어려운게 사랑이더라!

더구나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성숙한 단계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부어지기 위해서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나는 이번 3번째 40일 금식 마지막 주간에 비로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으로부터의 그 초월적이면서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적용가능한 그런 신적 사랑을 받고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내 마음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세월 믿음의 여정 가운데서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찾았건만 깨닫지 못했던

 

어쩌면 이 사랑이란 최고의 가치임이 이제는 느껴진다.

 

내가 이것을 심령으로 깨닫지 못했다면 아!

죽음의 순간에 나는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생각해본다.